광산탓일지도 몰라! by 작은나무

지지난 주, 중부지방과 경북지방 등등 많은 곳에 늦은 장마이자 게릴라성 집중 호우로 많은 곳이 물피해를 입었다. 그 가운데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은 큰 산사태가 나서 8명이 사망. 실종되고, 마을은 지붕만 남긴 채 수십채가 흙더미에 덮이거나 물난리를 입어 2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재민이 되었다.

이번에 비 피해가 난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는 강원도 영월과 붙어 있는 곳으로 서벽리를 넘어 우구치리에서 영월군 상동읍으로 넘어가는 88번 지방도로가 나있다. 구불구불 백두대간 도래기재를 넘는 이 도로와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도래기재 터널은 일제시대였던 1925년에 뚫렸다.
산사태가 난 서벽리에서 백두대간 도래기재를 넘어 위치한 우구치리에는 금정광산이라는 폐광산이 있다. 이 금정광산은 한반도의 대표적인 금광으로 '짚신 신고 그 앞을 지나도 신발에 금조각이 박혀 나왔다'는 이야기가 회자될 만큼 금이 많이 나던 곳이다. 이곳의 금을 캐고 가져가기 위해 우구치리에는 일제시대 때, 봉화군 최초의 변전소가 만들어지고, 소학교가 생기고, 순사가 10명이 넘었다는 주재소도 들어섰고, 도로가 생겼고, 터널이 뚫리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금을 캐던 그 시절, 큰 마을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그 사람들 누구나 할 것없이 땅을 파헤치면서, 땅을 어떻게 팠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땅밑에는 많은 구멍이 그 주변으로 생겼고 그래서, 그 지역의 지반이 약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약해진 땅에 집중호우로 많은 물이 유입되고 그래서 더 약해진 지심으로 인해 이번 집중호우에 춘양면에 산사태가 난 것도 광산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광산으로 유명한(?) 태백의 경우, 약해진 지반 탓으로 몇 년 전 한 초등학교가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던 적이 있다.
 
일제시대를 시작으로 7~80년대까지 활발했던 광산개발이 90년대에 오면서 사양산업이 되었고, 광산업자들이나 정부는 폐광된 광산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 원칙으로 보면 오염자부담원칙에 광산업자가 광해방지사업과 복구의 책임이 있는 게 맞지만 폐광된 후 오랜 시간동안 방치되고 광산 소유주와 사업자가 일치하지 않는 등 사업자 추적이 힘들어지면서 광해방지사업의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더 이상의 광산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06년에 ‘광산피해의 방지 및 복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광해방지사업단을 설립했지만 제때에 복구하지 않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진행되는 복구작업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실제 정부가 5년 계획으로 진행하고 있는 ‘광해방지사업’에 투입되는 비용은 2천550억원이나 되며 올해만 해도 관련 예산이 229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광해방지사업단이 제대로 광산현장을 옛 상태의 숲으로 복원하기는 커녕 까만 광산폐석더미 위에 골프장을 짓는 등(경북 문경 백두대간 주변 지역 등) 사업단이 만들어진 목적 자체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광해방지사업단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 있는 폐광산과 채굴을 멈춘 휴광산을 합치면 모두 2000여개 정도가 되고, 백두대간 주변으로 묻혀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인해 백두대간에 흔적을 남긴 폐광산도 수백 개에 이른다.

앞을 내다보는 계획과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한 이 때, 금정광산을 비롯한 폐광산에는 책임있는 자세의 정부 대신, 지금도 혹시나 있을 금을 찾을 버릴 수 없는 꿈을 가진, 광산귀신이 붙은 사람들이 일년에 한두어명씩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참고표 : 2006년 휴폐광산 현황> 
<관련 사진 :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의 모습_출처_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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