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농부? by 작은나무

지나간 일요일에 감자를 심었다.
조금 늦었다고들 했지만, 요번 봄은 날씨가 추운 편이어서 늦게 심은 게 시기를 잘 맞췄다싶었다.

삼년 전부터 가꾼 밭에다 감자를 심었다.
물론 밭 간 사람은 동네 아저씨. 퇴비 준 사람도 동네 아저씨.
고랑 만들어 준 사람도 동네아저씨다. 그리고 밭 빌린 값(도지?)도 아저씨가 낸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사람들한테 "내 밭에 가야해요! 내 밭에 감자심을꺼야요!"
라고 하지만, 그건 내 밭이 아니고 아저씨 밭이다.
근데 아저씨가 바빠서 전적으로 밭을 일굴 수 없으니까,
씨앗은 내가 심고, 모종도 내가 심어서 생색을 내는거다.
으음... 뭐 어쨌거나, 그래도 수확이 나오면 아저씨네랑 많이 나눈다.

작년에는 고랑도 내가 만들었었는데, 괭이질이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비닐도 내가 씌웠는데, 비닐씌우는 건 혼자하면 완전 서럽다.
(초등학생인 친구, 영은이가 고사리손으로 비닐을 잡아주긴 했다.)
올해, 요번에는 비닐씌우기랑 감자 심기를 아치랑 같이 했다. 0_0
 
비닐 씌우고 나니까 일한 지 한시간 남짓 지났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맥주를 한 잔 했다.
집 냉장고에서 꺼내온 맥스(요 동네에서는 맥스를 구경할 수 없나니, 으흠~~) 병맥주에,
서울 친구가 사다 준 고다치즈와 훈제치즈를 안주삼아 먹었다.

아치가
"우리 프랑스 농부다!"라고 했다.
지리산골짜기에서 병맥에 치즈라! + 거기다 무려 함양에서 사온 빵도 있었다!

맥주를 다 마시고, 감자를 심었다. 
씨앗의 세 배는 땅 속에 들어가게 심는 게 기본인데,
나는 올해로 감자를 심은지 삼 년째인데 왠지 요번에는 감자가 죽을 것만 같아서 아주 아주 얕게 심었다.
물을 뿌려주니 씨감자의 속살이 보였다. 이런!
그래도 왠지 내 감자는 잘 살아내 줄 것만 같다. +_+

한 달 정도 있다가 우리 동네 다랑논에 물대면, 다랑논에 지리산이 잠긴다.
그 다랑논둑에서 동네 언니랑 커피를 마실 것이다.
부르스타 갖다놓고 드립커피에 모카포트 에스프레소를 마실 것이다.
그럼 나는 다시 유럽농부가 되는거야? 0_0

참, 동네 언니는 지금 나의 마늘이와 양파를 키워주고 있다.
지난 겨울,
"마늘이랑 양파 모종 샀어요. 심을 거여요." 라고 했더니
"밭은 만들었니, 구멍 뽕뽕 뚫린 비닐은 씌웠니?"라고 언니가 물었다.
"아니, 모종만 샀는데!"
"으이구! 내 밭에 자리 좀 남으니 와서 심어!"라고 해서 그 밭에 마늘이랑 양파를 심었다.
그리고는 한번도 안갔다.

봄이 되고,
얼마 전 언니가 비닐 구멍을 찾지 못한 나의 마늘이 새싹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가 나에게 보낸 문자
"너의 농법은 뻐꾸기 탁란 농법이야!"라고 했다. 우웅...

밭이 수백평 될 거 같지? 크게 잡아도 50평 정도다. -_-;;

감자 심던 날, 감자를 심다가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봤더니 천왕봉이 보였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훗!


덧글

  • 아치 2010/04/06 20:24 # 삭제 답글

    푸히히. 내가 아치닷. 파리에서 뒹굴다 온~
  • 금낭화 2010/04/07 17:59 # 삭제 답글

    "비닐 씌우고 나니까 일한 지 한시간 남짓 지났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맥주를 한 잔 했다."가 압권이용~~~
    내 텃밭에도 감자 4알 심었어요~~ 수확의 기쁨을 함꼐 느낄수 있겠죠?? ㅎㅎ
  • 작은나무 2010/04/08 12:52 # 답글

    허리가 아팠다공!
    참, 토종고추씨앗 있는데 보내줄까?
    앗, 무진장에서 만나면 줄게. 너무 늦나?
    아니다, 풋고추만 먹을거라면 괜찮을거야. 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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