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꼬와 벤 by 작은나무

얼마 전에 손님이 다녀갔다. 이야기 하자면 조금 길다. 일본 여자와 영국 남자 부부인데, 이름은 아끼꼬와 벤. 아끼꼬는 벨기에에서 윤리적 소비와 공정무역 쪽을 공부했고, 벤은 평화학 분야를 공부했다. 벨기에에서 결혼을 하고 일본에 와서 살기로 한 그들. 일본에서 그들은 지역을 위한 공정무역 가게를 열었고, 잠시 살다 한국을 시작으로 다시 여행을 한다 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시작할 무렵 아끼꼬와 벤은 일본판 빅이슈에 손톱만큼 실린 한국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 맵’의 기사를 보았고, 그곳에 메일을 띄웠다. 자신들 소개, 여행에 대한 이야기 또, 지리산을 여행하고 싶다는 내용 등. 그 여행사에서 소개한 곳이 바로 지리산 우리 집!
  
그 당시 나는 진동리 여행 중 우연히 그 연락을 받았고 바로 사흘 뒤, 아끼꼬와 벤이 지리산으로 왔다. 그렇게 갑작스레,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끼꼬와 벤은 일본에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와서,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믿고 남해를 찾았단다. 그런데 남해에선 전통문화, 그러니까 말하자면 토테미즘 같은 것(?)이나 옛 마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수를 지나서 구례, 남원으로 해서 지리산까지 빨리 오게 된 것! 여수엑스포 따위를 전혀 몰랐고, 그렇게 복잡한 곳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아끼꼬와 벤은 그로부터 3박4일을 지리산에서 머물고 떠났다.
 
비슷한 느낌의 친구들은 어디서든 알아보기 마련이다. 실상사 이야기, 이곳에 귀농, 귀촌인들이 많다는 이야기, 그래서 여기가 느슨한 공동체스럽다는 이야기, 주변 대안학교 이야기 등을 했다. 아끼꼬와 벤은 빨치산과 한국전쟁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건 좀 대화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찌 어찌 말은 다 통했다! 이 친구들이 머물던 때에 가까운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에서 한 학기를 끝내며 축제를 열었다. 동네 구경하고, 유기농가게 구경하다가 작은학교 축제까지 함께 한 아끼꼬와 벤. 알고 보니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았고 나중에 일본에서 대안학교와 같은 배움터를 만들 꿈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게다가 지리산 이후 계획된 여행지는 안산의 아힘나학교라는 대안학교였으며, 서울에서는 성미산학교와 하자센터에도 다녀갔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하루는 아끼꼬가 빨래를 한다고 했다. 세탁기를 사용하랬더니 아니란다. 그래서 빨래판을 가져다주며, 재활용비누 사용을 권했다. 아끼꼬는 그것도 아니라며, 오로지 물로만 빨래를 한다고 했다. 씻을 때도 오로지 물로만! 갑자기 스치는 생각, 밤이 되어도 이 친구들이 묵는 방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아끼꼬, 전기도 안 써요?” 안 쓴단다. “일본에서도?” 안 쓴단다. “냉장고도?” 안 쓴단다. “어떻게?” 자신들은 채식을 하니까 우유나 버터, 고기, 달걀을 저장할 필요도 없고, 채소도 텃밭을 이용하거나 그때 그때 조금씩 구입하기에 필요 없다 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손님용 냉장고를 켜지도 않았고, 물을 데우는 전기포트도 사용하지 않았다. 몇 달의 여행가방이라고 보기에는 작은 배낭 속에서 자신들이 가져 온 도자기 그릇을 꺼내 현미와 흑미로 밥을 하고, 매실절임 반찬에, 늘 들고 다니는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아끼꼬와 벤이 서울로 떠나는 날,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며 지리산둘레길안내센터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수채화로 그려진 지리산마을 엽서를 보더니, 아끼꼬는 이런 엽서를 찾고 있었고 사고 싶다 했다. 하지만 엽서가 비닐에 담겨 있어서 쓰레기가 나올까봐 고민이 된다 했다. 아끼꼬의 그 말에, 쓰레기제로 운동을 하는 정토회가 생각났다. 정토회 사람들이 버섯을 좋아하지만 가락시장에서도 한 팩씩 포장되어 팔기에 팽이버섯은 사 먹지 못한다는...... 오래 전에 들은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끼꼬는 비닐포장지를 두고 가면 안내센터에서 다시 사용할지를 묻기까지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 다시 사용하지 않을거야”라고 대답하며, 포장되지 않은 엽서 두 장을 챙겨 주는 것이었다. 

아끼꼬와 벤이 벨기에에서 일본으로 올 때, 기차와 배를 이용해 17일 만에 일본에 도착했다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들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배,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것이라 했다. 지금은 중국을 지나 동남아 어디쯤에 몸을 누이고 있을 그들. 여행이 삶이고 여행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나며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고 했던 아끼꼬와 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아끼꼬와 벤은 심지어 시계도 사용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도 그들은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잠드는 자연의 시간과 그들의 몸과 마음은 그렇게 하나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실천하며 사는 아끼꼬와 벤에게서 숙연함까지 느꼈다. 

최근에 읽은 문장이 생각났다.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다(루이스 멈포드)” 
입추가 지나고 하루하루 바람이 다른 요즘,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보다 여유롭고 기쁘지 아니할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라고... 쓰면서도 나는 시계를 본다.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졸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 몸이 졸리는 것은 자연의 시간이기 보다는 내가 본 시간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지금 내 삶에서는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내 생각을 규정한다. 나는 아직 멀었다. 어쨌든, 밤 열한시가 넘었다. 자야겠다.   
    

*** 단체 소식지에 쓴 글인데, 소식지에 나온 글은 좀 짧아졌다. 몇 줄 길게 썼더니 편집을 했는데, 줄인다고 줄인 것이 느낌이 완전히 달라, 내 글이 아닌 것 같다...고 나는 느낀다. 이런 기분이구나! 글에 손댔을 때 속상한 기분이. 

*** 뭐 어쨌거나 아끼꼬와 벤, 그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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