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교회탑 by 작은나무

짧게 바다 근처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일이 있어 하루동안 구례를 다녀왔다.
피아골 가다가 연곡분교 지나 오른 쪽 길 오르막을 아주! 힘차게 밟아야만 나의 오래된 갤로퍼는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농평마을, 농평교회
그 옛날에는 교회가 멀어, 어머니는 땅을 내어 교회를 지었고,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을 농평분교 땅을 내 주었다.
그 시절 시골 학교들은 거의 모두,
마을공동체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는 몰랐으나 소리없이 나눔을 실천할 줄 알았던 이들이 내어 놓은 땅이었다.

젊은이가 떠나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학교는 문을 닫고.
그렇다면 그 학교 땅은 다시 마을로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작은 학교를 문닫게 만드는 지금의 행정은, 돌아오고 싶어도 젊은이와 아이들을 돌아올 수 없게 만들고,
교육부 배만 불리고, 교육부만 좋은, 땅장사하게 하는 일인 것만 같아 씁쓸하다.

어쨌든, 그 옛날 교회를 세울 때,
교회종 철탑은 구례와 하동을 잇는 당재 아래 농평마을, 그 꼭대기 마을까지 세발트럭이 옮겨다 주었고
교회종은 화물기차로 와서 구례역에서 택시로 옮겼는데, 그 종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택시 뒤가 덜커덩 하며 들렸다고 한다!!

높기만 하면 누구나 자기 동네가 '하늘 아래 첫동네' 래.
하늘아래 첫동네 농평마을은 예전엔 마을 2-30호쯤이었다가 지금은 공기좋고 경치좋아 왔다는 외지인이 더 많다. 
열 다섯 가구 가운데 서너집만 집을 지키고 다른 집들은 별장처럼 쓰인다고.

그 서너집 가운데 교회 세우고 학교 땅을 희사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 준 토박이 할배가 살고 계신다.
그 무겁다는 교회종도 녹은 슬었으나 세월 속에서도 종탑에 굳건히 달려 있다.

교회는 떨어진 시멘트 사이로 자기가 흙벽집임을 증명하며, 깨진 창문으로 바람 숭숭 맞으며 남아 있다.
그게, 그렇게 외로워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다.




덧글

  • ㅠㅠ 2012/09/16 01:58 # 삭제 답글

    흙흙, 옛날 청생때 농평마을에서부터 칠불까지 재를 넘어 걸어갔었드랬는데요 ㅠㅠ
    그게 벌써 8~9년 전 일이라니, 실감나질 않아요 ㅠㅠ
  • 작은나무 2012/09/17 22:48 #

    오옹. 그러게요. 세월이 화살같아요. 어엄청~ 변했어용. 당치, 농평, 당재...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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