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있는 집 by 작은나무

십년 전, 귀농학교를 다닐 때였다. 첫 강의였던가? 왜 귀농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내 귀농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햇볕에 뽀송뽀송 빨래를 말리고, 그 따뜻하게 마른 빨래에서 햇빛 냄새를 포시시 맡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어떤 이는 공감하고, 어떤 사람은 에~ 그게 다야? 라고 할 수도 있는 사소한 이유가 누군가에겐 아주 중요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귀농학교를 졸업(!)한 지 오년, 제대로 빨래를 말리고 싶은 이유에 몇 가지 이유를 얹어 시골로 이사를 했다. 남들은 귀농, 귀촌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나는 한없이 가볍게, 시골로 이사!라고 늘 말한다. 어쨌건 시골에 와서, 지하철을 타는 출근길이 아니라 남들 여행하는 지리산 가는 길이 출근길이 되고, 남들 휴가 가는 계곡이 동네 물놀이 장소가 되어도 주 5일 일터에 나가야 하는 삶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칼퇴근을 해도 산자락 아래 마을은 퇴근하면 해가 져 있는 일상. 주말에는 이런 저런 행사나, 짧은 여행 따위의 다른 일들이 생기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빨래를 햇볕에 말리는 일을 자주 하지 못했다. 기껏 빨래하고는 거실에 널어두고 나가야 하는 시골살이라니! 뭐, 그게 주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나, 시골에서마저 일정하게 일터로 나가야하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다. 해가 있는 시간에 어딘가에 얽매였던 삶은 초,중,고에 대학까지, 약 십 육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고. 저녁이 있는 삶만큼이나 햇살과 함께 하는 삶도 중요하잖아! 그리고 삼년을 넘게 시골에 살아보니, 달마다 나오는 마약같은(!) 급여가 없어도 이제는 지속가능하게 시골에서 살아볼 수 있겠다란 막연한 용기가 생겼다. 그런 충천한 용기로 일을 그만둘 즈음, 마당 있는 지금 집으로 이사했다. 앞마당, 뒷마당에 텃밭을 일구고, 큰 음나무 그늘 아래 표고목들을 세우고, 헛간 위로 호박넝쿨을 올리고. 그리고 마당 옆 감나무 두 그루 사이에 빨랫줄을 이었다. 

그러나, 약을 한꺼번에 끊기는 어려운 일! 아직은 정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일을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해, 일주일에 사흘은 일터로 출근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은 뭔가 확실히, 굉장히 달라졌다. 대나무 빨래줄에 햇볕 뽀송뽀송 빨래를 말리는 횟수가 늘었고, 해지는 들녘을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가며, 마당 텃밭에서 푸성귀를 일구는 재미도 이제야 제대로 맛보고 있다. 

동네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몇 달을 집을 비웠다 돌아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시골집이 내 집인 것만으로, 이곳에 깃대여 사는 것만으로도 몇 백 번의 절을 해도 부족할 만큼 우리는 행복하다고. 행복지수 1위라는 부탄이나 방글라데시만큼, 여기 사람들 행복지수는 높을 거라고. 어쩌면 방글라데시보다 높을지도 모르겠다고. ^^

마당 있는 집에서 한해를 나고 두 해째를 맞는다. 그곳에 꽃다지 피는 봄이 있고, 시원한 나무그늘 여름이 있고, 낙엽 쓸어야 하는 가을이 있고, 서릿발 시린 겨울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내 삶이 이렇게 깊어지는구나.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하던 싯구가 떠올랐다. 마당에 물든 감나무 잎이 그득하다. 아침에 마당을 쓸다가 깨달았다. 단풍 구경을 하러, 낙엽을 밟으러 굳이 바깥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글을 쓰고 나면, 몇 번을 절을 해도 고마운 이 마당에 의자 하나 내어 놓고 맛있는 커피를 내려 마셔야겠다! 

*** 단체 소식지 11-12월에 실린 글이다. 이번에는 분량을 맞게 썼는지 거의 안고치고 그대로 실렸다. 올 해 책 열심히 읽었는데, 내년에는 글읽기에 더해, 글쓰기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 내년에는 급여를 받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살아보는 것이 목표이다. 뭐, 한 두달 정도의 부정기 알바는 봐주자. 그리고 급여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적절히 절약하면서 옹색하지 않고, 하고싶은 거 다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평소때처럼 여행도 다니는 삶이어야 이 목표는 빛이 난다고 생각하며 세운 목표다. 아자아자! 
 

덧글

  • 깊은강 2012/11/15 18:13 # 삭제 답글

    쩍쩍쩍,,,,조으다....
  • yuri 2012/11/21 20:31 # 삭제 답글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좋군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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