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여인 by 작은나무

여행 떠나기 전 반쯤 읽다 두고 간 소설을 다녀와서야 다 읽었다.

홋카이도를 여행하며
어, 저건 섬마가목인가? 울릉도처럼 마가목 열매 같은 게 달린 나무가 가로수네?
라고 했는데, 소설에서 알려준다.
삿포로의 가로수가 마가목이라고.

또, 렌터카 회사에서 준 지도이자 안내책자에 나온 동상을 남편이 가리키며, '이 사람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홋카이도 대학의 존경받는 유명한 교수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동상이 윌리엄 클라크라는 미국 농학자이자,
한국인에게는 보이즈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도
소설에서 알았다.

홋카이도 대학은 산책가다 말았지만,
연어 이야기도, 마가목 이야기도, 홋카이도 대학 이야기도,
채 다 읽지 못하고 갔던 소설책의 남겨둔 부분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더 와 닿는다.

일본의 눈이 많은 삿포로와
한국의 눈이 많은 대관령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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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하순이었는데....
집 앞 거리의 가로수가 너무 낯익은 거예요. 나무가 낯익은게 아니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새빨간 열매가요.
어쩌면 이럴 수가. 거리의 모든 가로수가 오빠하고 미라노 아주머니하고 구판장 아주머니랑 황병산 아래로
나뭇가지를 꺾고 열매를 따러 가서 보았던 마가목이었어요. 대관령에서는 깊은 산속에 있는 나무가
여기서는 신기하게도 거리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거였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나무를 보자마자 누가 말해주듯
금방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여기는 낯선 곳이 아니다. 아니, 낯선 곳이라 해도 저 나무만 곁에 있다면 그것 말고
다른 모든 것이 낯설어도 견딜 수 있을 거 같은 자신이 생겨났어요.

예전에 오빠가 그랬죠. 마가목이란 이름이 봄에 새싹이 돋을 때 잎이 말의 이빨처럼 힘차게 솟아나서 붙인 거라고.
나는 말을 이빨을 직접 본 적이 없는데, 그때 대관령에서 마가목 잎을 보면서 아, 말의 이빨이 이렇게 생겼는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마가목을 일곱 번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나무라고 해서 '나나카마도'라고 불러요.
그만큼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겠지요,
옛날에 벼락의 신이 홍수로 떠내려가다가 죽을 힘을 다해 붙잡은 나무가 마가목이었대요.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배를 만들 때 반드시 마가목 나무판 하나를 썼다고 해요, '함께 있으면 안심'이라는 꽃말도 그래서 생겨났고요.

- p.249-250, 삿포로의 여인, 이순원, 문예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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